앞 문서에서 말로는 안 된다는 데까지 왔습니다. 그러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— 어휘를 더 정교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.
오버핏, 세미오버핏, 루즈핏, 릴랙스핏, 와이드핏… 이렇게 촘촘히 나눠 두면 언젠가 다 담기지 않을까.
실제로 세어 봤습니다. 안 담깁니다. 그리고 안 담기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.
참고로 세미오버핏은 셀러 37명이 69번 쓰는 말인데, 이미지 분석 모델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. 하프벌룬핏은 더합니다.
01 · Count
상품 설명 1만 5천여 건에서 "○○핏" 형태의 표현을 전부 뽑아 세어 봤습니다. 이미지 분석 모델이 쓴 초안과, 셀러가 검수해 고친 최종본을 나눠서 봤습니다.
핏 표현 종류
핏 표현 종류
두 번 이상 등장한 것만 센 값입니다. 한 번만 나온 것까지 다 세면 32종 대 205종이 되고, 거기서 오타와 문법 조각을 걷어내도 161종이 남습니다.
많이 쓰이는 순서로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. 괄호 안은 등장 횟수입니다.
루즈핏(2,535) · 오버핏(1,987) · 슬림핏(1,279) · 와이드핏(826) · 벌룬핏(179) · 레귤러핏(178) · 일자핏(129) · 머슬핏(99) · 세미오버핏(69) · 떨어지는핏(51) · 스트레이트핏(49) · 오버사이즈핏(46) · 크롭핏(38) · 가오리핏(37) · 배기핏(36) · 박스핏(36) · 플레어핏(33) · 기본핏(24) · 타이트핏(22) · 바지핏(22) · 버뮤다핏(20) · 정핏(19) · 부츠컷핏(18) · 소매핏(17) · 박시핏(17) · 조거핏(14) · 세미루즈핏(10) · 세미크롭핏(10) · 세미와이드핏(10) …
앞의 넷이 전체의 대부분입니다. 그런데 다섯 번째부터가 문제입니다 — 벌룬·가오리·배기·플레어·부츠컷처럼 형태가 뚜렷한 옷일수록 뒤쪽에 있습니다. 자주 안 쓰이지만, 쓰일 때는 그 옷의 정체 그 자체입니다.
그리고 정핏 · 기본핏 · 바지핏 · 소매핏 같은 말도 섞여 있습니다. 어느 사전에도 없는, 셀러가 그냥 그렇게 부르는 말들입니다.
더 눈에 띄는 것은 이쪽입니다. 셀러가 쓰는 표현의 84.9%는 모델이 한 번도 쓰지 않는 말입니다. 겹치는 부분이 생각보다 훨씬 작습니다.
02 · The Tail
종류가 많아도 자주 쓰는 몇 개만 알면 대부분 커버된다면 문제가 안 됩니다. 그것도 확인했습니다.
| 전체의 몇 %를 덮으려면 | 모델 | 셀러 |
|---|---|---|
| 50% | 2종 | 2종 |
| 80% | 3종 | 4종 |
| 90% | 4종 | 12종 |
| 95% | 5종 | 27종 |
| 99% | 11종 | 123종 |
절반까지는 똑같습니다. 둘 다 루즈핏·오버핏이면 됩니다.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갈라집니다. 모델은 다섯 개면 95%가 끝나는데, 셀러는 스물일곱 개가 필요합니다.
99%까지 가면 열한 개 대 백스물세 개입니다. 사전을 아무리 늘려도 끝에서 계속 새로운 게 나온다는 뜻입니다.
03 · Everyone Their Own
그러면 그 꼬리에 있는 표현들은 누가 쓰는가. 표현마다 몇 명의 셀러가 쓰는지 세어 봤습니다.
| 그 표현을 쓰는 셀러 수 | 모델 | 셀러 |
|---|---|---|
| 1명뿐 | 46.9% | 62.4% (128종) |
| 2~4명 | 9.4% | 19.0% |
| 5~19명 | 15.6% | 12.2% |
| 20명 이상 | 28.1% | 6.3% (13종) |
셀러가 쓰는 표현의 62.4%는 그 셀러 한 명만 씁니다. 그리고 스무 명 넘게 공유하는 표현은 열세 개뿐입니다.
모델은 정반대입니다. 한 모델이 쓰니 당연히 표현이 공유되고, 28.1%가 스무 명 이상에게 걸립니다.
공용 어휘는 열세 개 정도이고, 나머지는 각자 만든 말입니다. 사전을 만든다면 그 열세 개는 담을 수 있지만, 나머지는 담을 수가 없습니다 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.
04 · How They Make Them
새 표현이 아무렇게나 생기는 게 아닙니다. 규칙이 보입니다. 기존 표현 앞에 강도를 나타내는 말을 붙입니다.
세미오버핏(69회·37명) · 세미루즈핏(10·5) · 세미크롭핏(10·6) · 세미와이드핏(10·6) · 세미핏(3·1) · 세미머슬핏(3·1) · 세미레귤러핏(2·2) · 세미벌룬핏(2·2) · 세미슬림핏(2·2) · 세미배기핏(2·1)
열 종 전부, 모델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. 그런데 셀러 53명이 씁니다. 세미오버핏 하나만 37명이 쓰고 69번 등장합니다.
다른 방향으로 만들기도 합니다.
하프벌룬핏 — 벌룬핏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
루즈오버핏 · 빅사이즈오버핏 · 슈퍼오버핏 — 오버핏보다 더 오버인 것
루즈가오리핏 · 와이드커브진핏 · 빅와이드핏 — 두 형태를 겹친 것
기존 표현이 부족하면 앞에 말을 붙이고, 그것도 부족하면 붙인 것 위에 또 붙입니다. 오버핏 → 빅사이즈오버핏처럼 강도가 계속 올라갑니다.
특히 하프벌룬핏은 앞 문서와 그대로 이어집니다. 벌룬핏이라는 말이 이미 있는데도 "그건 아닌데 비슷한 것"을 부를 말이 따로 필요했던 것입니다. 그 정도로 형태의 차이가 셀러에게는 중요합니다.
한두 사람의 버릇이 아닙니다. 서로 모르는 쉰세 명이 각자 같은 조어법에 도달했습니다. "오버핏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"을 부를 말이 필요했고, 다들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.
그리고 이건 "세미-"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. 강도를 붙이는 말 여덟 가지를 다 세어 봤습니다.
| 붙이는 말 | 셀러가 만든 표현 | 모델이 쓰는 것 |
|---|---|---|
| 세미- | 10종 · 113회 · 53명 | 0종 |
| 빅- | 4종 | 0종 |
| 슈퍼- · 하프- · 크롭- | 4종 | 0종 |
| 루즈- · 와이드- · 타이트- | 여러 종 | 0종 |
| 오버- | 3종 · 48회 | 1종 |
여덟 가지 중 일곱 가지에서 모델은 하나도 쓰지 않습니다. "오버-" 하나만 예외로 한 종(오버사이즈핏)을 씁니다. 이 조어법은 셀러 쪽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다.
어휘는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계속 생산되는 것입니다. 사전을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, 사전을 만드는 속도보다 셀러가 만드는 속도가 빠릅니다.
05 · What They Fix
셀러가 모델의 초안을 검수할 때 어느 항목을 가장 많이 고치는지도 봤습니다.
| 항목 | 고쳐진 비율 |
|---|---|
| 핏 및 실루엣 | 68.0% |
| 핏 | 58.3% |
| 상의 디자인 | 51.4% |
| 디테일 | 41.5% |
| 소재 및 색상 | 40.7% |
| 색상 | 23.2% |
핏 계열이 가장 위이고 색상이 가장 아래입니다. 색은 모델이 봐도 알 수 있고, 핏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. 앞 문서에서 본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— 평균 안에 있는 것은 맞히고, 밖에 있는 것은 못 맞힙니다.
그리고 핏 표현이 들어 있는 문서만 놓고 보면 46.3%에서 셀러가 그 표현을 바꿉니다. 두 건 중 하나꼴입니다.
정리
"핏 어휘를 잘 정의하면 된다"는 접근이 왜 안 되는지가 숫자로 나왔습니다.
- 셀러 어휘가 모델 어휘의 5배가 넘고, 그중 84.9%는 모델이 쓰지 않는 말입니다
- 꼬리가 길어서 스물일곱 개를 알아야 95%, 백스물세 개를 알아야 99%입니다
- 62.4%는 한 셀러만 쓰는 말이고, 공용 어휘는 열세 개뿐입니다
- 새 표현이 계속 만들어집니다 — 강도를 붙이는 여덟 가지 방식 중 일곱 가지는 모델이 전혀 쓰지 않습니다
어휘는 따라잡는 대상이 아닙니다. 사전을 완성하려는 순간 이미 새 표현이 생겨 있습니다. 그리고 그 표현들은 대부분 한 셀러의 것이라, 공용 사전에 담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습니다.
그러면 방향이 하나로 정리됩니다. 어휘를 쫓아가는 대신, 그 셀러가 그 말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그 셀러의 옷에서 배우는 것. 앞 문서의 결론과 같은 곳에 닿습니다 — 브랜드마다 따로 있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.
그리고 이 표현들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쪽 재료이기도 합니다. 새 어휘가 생긴다는 건 새 옷이 나왔다는 뜻이고, 그건 거대 모델이 아직 모르는 옷입니다.